메타인지,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에도 필요한 이유 (1)

자, 여기 야심차게 스타트업을 시작한 "시혁이"가 있습니다. 시혁이는 고민합니다.

아...인생 쓰다. 계획대로 되지가 않네? 나같이 계획을 매번 짜고 실패하는 사람들한테 먹히게, '마이루틴'보다 더 좋은 스케쥴러 앱을 만들어야겠어!

이미지: https://blog.myroutine.team

시혁이는 곧장 친한 친구이자 개발자인 '지원이'와 함께 열심히 A라는 스케쥴러 앱을 만듭니다. 시혁이는 장기루틴이 아니라, 단기루틴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단기루틴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전,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혁이는 이 가설을 토대로 <잠들기 전 다음날의 계획을 짤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합니다.

그런데요, 뭔가 심심합니다.

프로토타입을 다 만들었는데 앱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혁이는 유저들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동기부여가 되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시혁이는 건너건너 음악 프로듀싱을 하는 '희진이'한테 부탁해, BGM을 몇개 받아옵니다. 그리고 희진이랑 계약할 때, BGM의 총 재생시간에 비례하게 저작권료를 내기로 협의합니다. 그렇게 시혁이, 지원이는 A라는 서비스를 야심차게 출시하게 돼죠.

그렇게 출시된 서비스 A는 나쁘지 않은 성장률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때.... 시혁이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합니다.

이상하게 유저들이 밤부터 아침까지 계속해서 서비스 창을 틀어놓습니다. 세션이 끊기지가 않습니다. 시혁이는 생각합니다. 아, 우리 서비스에 타임아웃 기능이 없어서 그대로 서비스창을 켜놓고 잠드는거구나! 서버 비용은 물론, 줄줄 새는 것만 같은 저작권료가 걱정된 시혁이는 유저가 1시간이 넘게 계획을 짜고 있으면 스케쥴러가 강제로 닫히도록 서비스를 수정합니다.

그런데 더더 이상하게도, 그 날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멈췄습니다. 아니 도리어, 유저가 계속해서 빠져나갑니다.

이상함을 감지한 시혁이는 지원이와 고군분투하며 원인을 찾습니다. 목표 서비스였던 '마이루틴'을 열심히 분석하고, 다른 스케쥴러 서비스와 비교도 해보고... 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시혁이는 직접 이탈고객을 어렵게 찾아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시혁: 혹시 A라는 앱을 아세요?

이탈고객: 아 그럼요! 알죠, 거기 음악이 너무 좋아서 ASMR로 썼던 앱이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자꾸 음악이 끊기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삭제해버렸어요.

시혁: ???

어떠세요? 들으시면서 '에이,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몰라? 바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물론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저는 UX리서치를 수행하면서 이와 유사한 순간을 마주한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으로 서비스를 봅니다.

즉, 시혁이는 "내가 만든 앱은 스케쥴러 앱이야"라고 생각하고, 내가 이 앱을 '스케쥴러'로 만들었으니, 유저는 우리의 앱을 '스케쥴러 앱'으로 생각할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경쟁사 조사를 할때도, 고객을 볼때도, '스케쥴러 앱'이라는 시각에 갖혀서 우리 앱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되는거죠.

그리고 우리의 유저를 볼때도, 우리는 보통 유저를 '우리의' 시각 안에 가둬놓고 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데이터들, '우리의 기준'에서의 충성 고객, '우리의 기준'에서 이사람들의 행동과 패턴들....

하지만 실제로 유저는 어떨까요? 우리의 유저가 One of them이듯이, 우리의 앱 또한 유저들에게 One of them입니다. 우리가 생각한 가치가, 유저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가치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유저에게 가치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유저가 우리의 앱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에리얼의 포크라고나 할까요?

(포크를 '빗'의 용도로 사용하는 에리얼)

그러면 서로가 서로의 one of them인게 어떻게 문제가 될까요?

아까 시혁이와 희진이의 얘기로 돌아가볼게요. 만일 시혁이가 우리의 앱이 스케쥴러가 아닌 asmr로 쓰인 것을 알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저라면 희진이를 어떻게든 꼬셔서 asmr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피봇팅해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의 강점은 스케쥴러 기능이 아니라, 좋은 bgm에 있었던 거니까요.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는 상황들은 다음과 같은 비극(?)으로 나타납니다.

위의 그림에서, 우리는 우리의 경쟁서비스가 B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B에 비해 더 나은 강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고 쳐볼게요. 근데 고객의 입장에서 우리의 앱의 경쟁사는....

사실 B가 아니라 C였던거죠! 이를테면 시혁이의 경쟁사는 마이루틴이 아니라, 스푼 라디오, 유튜브의 ASMR 컨텐츠였을 수도 있는 겁니다.

어떤 직무이건, 기획자이건 개발자이건 디자이너건, [본인의 결과물이 의도한 대로 유저에게 다가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리스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리스크를 피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대답은 저번처럼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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